
[노징(Nosing)] 잔에 따르자마자 깔끔하고 명료하게 피어오르는 주니퍼 베리의 향미가 대단히 선명하여, 진의 정체성을 누구나 직관적으로 알 수 있을 만큼 확실한 존재감을 뽐낸다. 주니퍼 베리의 뒤를 이어 오렌지 제스트 특유의 쌉싸래하면서도 상큼한 풍미가 부드럽게 들이치며 잔 전반에 상쾌한 생동감을 더한다. 잔에 코를 가까이 가져가는 순간, 다채롭고 생생한 허브 향미가 폭발하며 보타니컬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문자 그대로 피부에 와닿게 만든다. 깊이 노징을 하다 보면 뒤이어 올라오는 매케한 스파이스의 앞단으로, 은근하고 부드러운 심플 시럽의 단맛이 숨바꼭질하듯 숨어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화이트 스피릿 특유의 알싸한 스파이스가 풍성한 보타니컬 뉘앙스와 절묘하게 얽히면서, 마치 으깨지 않은 상태의 레드 페퍼 원물을 통째로 만지는 듯한 독특하고 이국적인 향신료의 향미로 화려하게 완성된다. 특히 시간이 흐름에 따라 초반을 강렬하게 지배했던 주니퍼 베리의 독주가 점차 차분하게 가라앉고, 그 빈자리를 더욱 짙고 다채로운 허벌한 뉘앙스들이 부드럽게 채워나가며 복합적인 깊이를 더한다. [팔렛(Palate)] 입안에 용액이 닿는 첫인상은 의외로 직관적인 단맛이다. 가볍고 매끄럽게 흘러 들어와 혀 전반을 달큰하게 한 번 절여내며 기분 좋게 미각을 깨운다. 그러나 단맛이 지나간 직후, 입안 가득 폭발적으로 피어오르는 강렬한 보타니컬 풍미가 대단히 인상적이다. 마치 미나리나 당귀 같은 향신채를 날것으로 강하게 베어 물었을 때처럼, 입안 빈 공간을 빈틈없이 채우는 생생한 그리너리함이 연상된다. 특히 적겨자를 씹었을 때 느껴질 법한 알싸하고 쌉싸래한 킥이 입체적으로 살아있어 스피릿의 활력을 더한다. 술을 입에 오래 머금고 충분히 굴리면 강렬했던 허벌한 자극들이 차분히 가라앉고, 그 자리를 눅진한 당분감과 함께 오렌지 제스트의 상큼하고 쌉싸름한 풍미가 부드럽게 채워나간다. 57%의 높은 도수 덕분에 혀 위에서 미끈거리는 묵직한 유질감이 감지되는데, 이 질감이 가벼울 수 있는 화이트 스피릿에 단단한 무게감과 구조감을 부여한다. [피니쉬(Finish)] 마시고 난 뒤 입을 열면, 마치 한여름의 푸른 허브 정원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로즈마리, 애플민트, 타임 등이 뒤섞인 진한 허벌한 브래스가 날숨을 타고 압도적인 여운으로 이어진다. 네이비 스트렝스 특유의 시원하고 화한 증발감 뒤로, 혀 주변에는 청사과의 새큰하고 산뜻한 뉘앙스가 기분 좋게 잔존한다. 훌륭한 미네랄 워터를 마신 뒤 느껴지는 쨍하고 깔끔한 쌉싸래함이 혀에 내려앉는데, 이 느낌은 시간이 흐를수록 싱싱한 쌈채소를 씹고 난 뒤의 내추럴한 쌉싸름한 여운으로 세련되게 발전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숨결 속에 남아있는 은은하고 달큰한 알코올감이 입안의 싱그러운 쌉싸래함과 오묘하게 교차하며, 투명하고도 기나긴 여운의 종지부를 찍는다. [총평] 보타닉테일즈의 이름값을 지키는 보타닉 폭발의 런던드라이진. 진피즈 만들어 먹고 싶다.